2012년 4월 23일 월요일

나는 이 순간 슬픔이다.

어떤 감정이든 그것이 기쁘고 행복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견디지 못하고 어쩔 줄 모른다. 
그래서 그것을 피하고자 몸부림치다 더욱 그것의 수령 속에 빠져들게 되고 결국 애초의 감정보다 더 큰 파괴력을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원치 않는 감정이 내부에서 발생할 때 그것을 잘 풀어냄으로써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가정 먼저 할 일은 그러한 감정을 인정하는 일이고 어떠한 형태로든 그것을 표현하는 일이다. 
 대부분의 분노는 에고에서 오는 수가 많다. 자존심과 인정받아야 한다는 욕구가 다쳤을 때 사람들은 쉽게 분노한다. 분노를 느낄 때 무조건 분노를 삭일게 아니라 그때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화를 내기에 앞서, 화가 났음을 인정하는 순서가 필요하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우선 크게 호흡을 하자. 그리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의 느낌을 살펴보자. 그렇게 호흡을 크게 내쉬며 분노의 에너지가 몸 밖으로 빠져나간다고 상상하자. 점차로 호흡이 안정되면 화의 근원을 찾아본다. 누군가 나를 무시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나의 권리가 박탈당한 것인가, 사랑 받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인가, 차근차근 생각해본다. 


 분노 못지 않게 우리의 내면을 흩트리는 것이 슬픔이다. 그것이 분노이든 슬픔이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어떤 감정이라도 그것 자체가 나쁘거나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이다. 감정은 그저 있는 그대로의 사실일 뿐이다. 슬픔 자체보다는, 슬픔은 나쁜 것이며 피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슬픔 그 자체는 고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왜 나에게 슬픔이 오는거야." 혹은 '슬픔은 피해야 해.' 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슬픔은 고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슬픔이 찾아오면 피할 생각부터 하지 말자. 슬픔을 그저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슬프다."라고 말하는 대신 "나는 슬픔이다. 이 순간 나는 슬픔이다."라고 말한다. 아무 판단이나 생각 없이 슬픔에 흠뻑 빠져 슬픔 자체가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감정에 몰입해서 눈물이 나면 그대로 울어라. 원하는 만큼 울고 나면 몸과 마음이 맑아진다. 바로 내적 자아와 일치되는 순간에 느낄 수 있는 자유로움 때문이다. 


 분노와 슬픔 두려움 등과의 화해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쁨의 에너지를 가져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기쁨보다 슬픔에 더 익숙하다. 행복이나 기쁨이 오는 순간 자신을 의심한다. 하지만 기쁨에는 어떠한 자격이나 조건도 필요없다. 
 기쁨의 에너지는 주인없는 동전과 같다. 늘 우리 곁에서 자신을 알아보기를 원한다. 기쁨은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었던 친구와 통화를 한다든가 책상 위에 꽃을 꽂아두는 일 혹은 거리의 걸인에게 조그만 돈을 건네는 일로부터 기쁨은 찾아온다. 이제부터 기쁘거나 행복할 때의 느낌을 잘 기억해 두자. 그리고 잠자기 전이나 깨어난 후에 다시 음미하자.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먹듯 감미롭게 그렇게, 행복의 에너지가 점점 커져 우리를 가능한 한 오랫동안 지배하도록. 
 우리의 영혼 자체가 축복이자 행복이다. 행복한 일이 있을 때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쁜 감정들과 화해하고 행복한 감정을 내면화시키는, 이러한 방법들이 결코 특별한 훈련을 하거나 영적으로 발달된 사람만 가능한 것들이 아니다. 해보지도 않고 신비한 영역으로 규정해 버리고 실행하지 않기 때문에 비형실적인 제안으로 들릴 뿐이다. 사실 누구나 제 감정들을 풀어내고 화해할 수 있다. 우리 모두는 본래부터 자유롭고 행복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홍신자님의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中 나는 이 순간 슬픔이다. 에서 인용하였습니다. 
중간중간 생략된 텍스트가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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